#01 “고민보다는 ‘아니면 말고’ 정신이 중요해요”

오수연 크레비스파트너스 홍보 팀장

오수연 크레비스파트너스 홍보 팀장 오수연은 임팩트 벤처 그룹 크레비스파트너스에서 홍보 담당자로 일한다. 10년이 훨씬 넘는 기간 동안 언론 홍보 경력을 쌓았지만 더 이상 일을 이어갈 동력이 없다고 느끼던 차, 남편의 주재원 발령으로 약 5년 동안 베트남에서 지내며 경력이 단절됐다.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던 언론 홍보 업무를 다시 시작하며, 같은 일도 근무환경과 관점에 따라 얼마든지 새로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중이다.

보통 어떤 스케줄로 일하고 계신가요?

주 5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주당 25시간씩 근무하고 있어요. 월요일에는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데 제가 워킹맘이기 때문에 아이들의 스케줄에 따라 요일을 조정하기도 하고요. 회사에서 그런 걸로 눈치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출근하면 업계나 경쟁사, 회사 관련 뉴스를 클리핑하고 보도자료를 쓰고 홍보 계획을 세우고 종종 기자 미팅을 하죠. 요즘은 대표님께서 사내 커뮤니케이션을 맡아달라고 하셔서 그쪽에 초점을 두고 있어요.

이전에도 언론 홍보 분야에서 일하셨나요?

홍보대행사와 인하우스 홍보팀에서 13년 정도 일했어요. 정말 홍보 외길을 걸었죠. 소비재부터 IT, 금융, 유아용품, 정치 쪽까지 다 다뤄봤어요. 그런데 성장의 여지가 없다고 느껴졌달까, 슬럼프에 빠져있을 때 마침 남편이 베트남 주재원으로 발령 받으면서 함께 가게 됐어요. 한 번쯤 외국에서 살아보고 싶기도 했고, 영어도 배울 수 있을 것 같아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거기서 4년 3개월 정도 지냈어요.

경력 단절에 대한 불안감은 없었나요?

그래서 HIWC(Hanoi International Women's Community)와 AWFH(Asian Women & Friends in Hanoi)라는 국외거주자 커뮤니티(Expat Community)에서 이벤트, 멤버십 및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는 보드멤버로 봉사활동을 했어요. 일주일에 한 번씩 모임에서 TED로 영어 토론 공부도 했고요. 뭐라도 하면서 감을 유지하고 싶었어요.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면 과연 뭘 할 수 있을까?’ 고민도 됐지만 언론 홍보 일을 계속하고 싶지는 않더라고요. 너무 힘들었거든요. 다시 그쪽으로 돌아가면 전문성은 인정받을 수 있겠지만, 즐겁게 일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어요.

어떤 부분이 가장 힘드셨나요?

일단 업무시간이 문제였어요. 특히 홍보대행사는 클라이언트의 업무 요청에 따라 움직여야 해요. 새로운 일을 따기 위해서 제안서를 쓰거나, 경쟁에 참여하는 작업도 필요하고요. 유연하게 근무하기가 어려운 분야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임신하고 아이를 낳은 후에는 인하우스 홍보팀으로 옮겼죠. 거긴 대행사보다 그나마 상황이 좀 나은 편이거든요. 저는 일하면서 워킹맘으로서 너무나 치열하게 살아가는 분들을 자주 봤어요. 어쩔 수 없이 아이를 회사에 데리고 와서 일하거나, 나이가 많아지면서 프리랜서나 계약직으로 빠지는 분들이요.

‘이 일에서 성공하려면 다른 건 다 버려야 하나?’하는 고민이 그 당시에도 있었어요.

그런데 크레비스파트너스에 홍보 담당자로 입사하셨어요.

여기서 원했던 것보다는 제 경력이 좀 더 길었지만 일단 자격 조건은 맞는 것 같았어요. 근무시간이 유연하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고요. 그리고 베트남에서 지내는 동안 저 자신에 대해 깨달은 게 하나 있었어요. 다른 사람에게 긍정적 영향을 끼치는 일을 좋아한다는 거요. 크레비스파트너스는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려고 하는 임팩트 벤처 그룹이잖아요. 이익을 추구하면서 좋은 일도 할 수 있다는 게 괜찮아 보였어요. ‘내가 여기서 일을 하면 간접적으로나마 사회에 기여하는 거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잘 할 수 있는 일이자 원했던 일이기도 한 거네요.

그렇죠. 그래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위커넥트 페이스북 계정에 올라온 크레비스파트너스 채용 공고를 보고 바로 지원하게 된 거예요. 집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풀고 바로 이력서를 써서 보냈죠. 운 좋게 붙었으니 운명 같은 일이에요.

실제로 일을 해보니 어떠세요?

요즘 너무 행복해요. 언론 홍보 일을 하기 싫다고 했던 게 무색할 만큼 너무 재미있어요. 일하는 곳이 어딘가에 따라 비슷한 일도 전혀 다르게 느껴질 수 있구나 싶어요. 예전에는 보도자료를 하나 써야 하면 그야말로 그냥 업무였거든요. 지금은 우리 회사에 무슨 일이 있으니 보도자료를 써야 한다고 하면, 너무 좋고 재미있어요. 알려야 하는 일을 알린다는 감각인 거죠.

원래 언론 홍보 담당자가 없는 조직이었는데, 하나부터 열까지 체계를 스스로 다 만들어가야 한다는 점에서 힘들지는 않나요?

만약 지금보다 어릴 때였다면 굉장히 힘들었을 것 같아요. 저는 시키는 일을 잘하는 스타일이지, 만들어서 하는 타입은 아니었거든요. 지금은 오히려 제가 하는 대로 홍보팀의 모양이 꾸려지는 거니까 너무 재밌죠. 하나하나 체계가 잡혀갈 때마다 보람도 엄청나게 크고요. 그리고 저는 예전에도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은 곳에서 일한 경험이 있어요. 그때 했던 보도자료 포맷이나 미디어 리스트 만들기, 회사소개서와 대표 약력 정리 등 크레비스파트너스에 그대로 접목할 수 있는 업무들이 많아요.

더 구체적으로 듣고싶어요.

저희 크레비스파트너스 김재현 대표가 언론에 노출된 적이 거의 없었어요. 그런데 2018년에 한국성장금융에서 출자한 200억원 임팩트 벤처 펀드 1호의 공동운용사로 선정됐어요. 이 일 때문에 회사에서 언론 홍보 담당자를 뽑은 것이기도 해서 제가 입사 후 보도자료를 뿌리고, 언론사 기자들에게 먼저 연락을 했죠. 기자들이 임팩트 벤처 업계를 잘 모르지만 글로벌 트렌드이기 때문에 관심은 있거든요. 크레비스파트너스가 이쪽에서는 가장 오래된 회사고, 대표도 경험이 많다는 이야기를 해서 주요 매체 네 다섯 개 정도와 대표 인터뷰를 진행했어요. 제가 다양한 분야의 홍보 일을 했기 때문에 분야에 따른 기자들의 특성이나 언론 트렌드를 아는 게 약간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조직 문화와 근무 환경이 비교적 유연한 회사이기에 도리어 배우는 부분도 있을까요?

회사에서 근무시간 내내 완전히 집중해서 일하기가 쉽지 않잖아요. 중간에 30분 정도는 딴짓을 하게 되죠. 그런데 여기서는 누구도 뭐라고 하지는 않지만, 스스로 철저하게 일하려고 노력해요. 저를 믿고 자율성을 주는데 그 기대에 부응해야죠. 이건 제가 일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과도 연결돼 있어요.

그 원칙이 뭔가요?

‘Integrity’라고, 진실성 또는 온전함이라고 번역할 수 있겠네요.

만약 제가 내일까지 이 일을 하겠다고 말했으면 그걸 반드시 해야 하고, 그럼에도 내일까지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판단이 든 순간 그 일에 관련된 다른 구성원과 바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거예요.

정말 쉬운 예를 들자면, 회사 출근 시간을 정확하게 지키는 거죠. 저희 회사에서는 구성원들이 언제 출근하는지 아무도 신경 쓰지 않거든요. 하지만 출근 시간에 1분이라도 늦지 않는 게 저 혼자만의 목표예요. 작은 것부터 어긋나기 시작하면 다른 일들에도 영향을 끼칠 것 같아서요.

앞으로의 커리어 계획이나 목표를 알려주세요.

지금 임팩트 벤처의 생태계 자체가 커지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크레비스파트너스도 엄청나게 성장할 거라고 믿어요. 거기에 제가 언론홍보 담당자로서 기여할 수 있는 바도 더 커질 수 있을 것 같아서 너무 기대돼요. 40대 중반에도 일하면서 가슴이 뛰고 5년 후, 10년 후를 상상할 수 있다는 게 정말 행복하죠.

다른 경력 보유 여성들도 수연님처럼 일할 수 있을까요?

그럼요. 우선 위커넥트 플랫폼을 통해서 채용 공고를 내는 회사들은 워킹맘이 유연하게 근무할 수 있다는 걸 전제로 하거든요. 개인적으로 협상할 필요가 없으니까 지원할 때부터 부담이 줄어드는 거죠.

사실 저처럼 다시 일을 시작한 여성들은 공통으로 하는 생각이 있어요. 일단 회사에는 들어갔는데, 한 달 정도 지나면 ‘내가 여기서 잘하고 있나? 고맙게 나를 뽑아줬는데 밥값은 하고 있나?’라는 걱정을 하는 거예요.

다들 잘하고 계시니까 그런 걱정말고, 의향이 있다면 무조건 도전해보라는 얘기를 하고 싶어요. 제가 베트남에 있을 때 지인이 이런 조언을 해줬어요. 뭘 걱정하느냐고. 일단 일을 하고 싶으면 지원서를 쓰고, 붙으면 들어가고, 떨어지면 어쩔 수 없고, 못하겠으면 나오라고. 그래서 저도 아무런 고민이나 걱정 없이 지원서를 쓸 수 있었어요. 고민보다는 ‘아니면 말고’ 정신이 중요한 것 같아요.

인터뷰: 황효진

황효진은 더 나은 여성의 삶을 위한 콘텐츠 플랫폼 ‘헤이메이트’의 콘텐츠 코디네이터다. 웹매거진 <텐아시아>와 <아이즈>에서 기자로 일했고, 에세이집 <아무튼, 잡지>를 썼다.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여성 여덟 명의 인터뷰집 <일하는 여자들>, 두 여성 프리랜서의 생존 실험 에세이 <둘이 같이 프리랜서>를 기획/공동집필 했다. 셀럽 맷, 윤이나 작가와 함께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를 여성의 관점에서 이야기해보는 네이버 오디오 클립 <시스터후드>를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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