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커리어와 삶이 같이 가게 된 것 같아요”
안수연 위커넥트 플랫폼 운영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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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수연 위커넥트 플랫폼 운영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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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수연 위커넥트 플랫폼 운영 매니저 안수연은 경력보유여성을 위한 채용 플랫폼 위커넥트에서 운영 매니저로 일한다. 프로세스 기획자이자 운영 매니저로 10년 이상 일했지만 출산 이후 일과 삶의 균형을 어떻게 맞춰야 할지 고민하게 됐고, 희망퇴직 후 한동안 육아에 집중하면서도 커리어를 이어나갈 기회를 찾던 중 위커넥트를 만났다. 출산과 육아를 경험한 여성이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가능하게끔 하는 판을 더 많이 만들고 싶다.
대전에서 일하고 계시죠?
남편과 주말부부로 지내면서 혼자 육아와 일을 병행하다가 얼마 전 대전으로 이사 갔어요. 위커넥트 일은 주 5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주당 25시간씩 하고 있어요. 일주일에 한 번 서울에 있는 사무실로 출근하고, 나머지는 재택으로 근무하죠. 원래 모범생 기질이 있는 편이어서 그런지 스스로 일하는 시간을 통제하는 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더라고요. 다만 집에서 일하는 시간이 길다 보니, 오히려 업무 시간과 휴식 시간이 엄격하게 분리되지는 않아요. 일부러 점심 약속을 잡거나 업무가 끝나는 오후 4시 이후로는 장을 보러 밖에 나가기도 하면서 컨디션을 조절하고 있어요.
처음부터 유연근무제에 잘 적응하신 건가요?
입사 초반 3개월은 힘들었어요. 나머지 동료들도 저처럼 아이가 있는 사람과 일하는 게 처음이라 배려를 굉장히 많이 해줬거든요. 어느 날은 제가 왜 그러냐고 도리어 화를 냈죠. (웃음) 상황이 되니까 일을 더 하려는 건데 동료들이 제 시간이나 에너지를 너무 신경 써주더라고요. 그리고 이전에 제가 다녔던 회사들과 일하는 환경이 너무 다르다 보니 모르는 부분도 많았어요. 처음에는 혼자 노력하다가 이제는 알고 싶은 건 알고 싶다고, 설명이 필요한 건 필요하다고 말해요. 업무상 이슈가 발생했는데 제가 놓쳤거나 잘못 처리했을 때도 솔직하게 얘기하고, 이후 해결책을 고민하는 식으로 일하죠. 제 경력이 길다고 해서 모든 걸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위커넥트에 맞게 일을 해나가야 하는 거니까요. 이런 과정에서 동료들도 제가 어떤 스타일인지 확실히 알게 되고, 서로 신뢰도 쌓이는 거 같아요.
이전 회사에 다닐 때는 어땠나요?
예전에 일했던 회사들은 유연 근무가 불가능했어요.
사실 아침 9시에 출근해서 오후 6시에 퇴근하는 스케줄은 아이를 키우는 사람에겐 너무나 부적합하거든요. 아무 생각 없이 일하다가 어느 순간 체력도 고갈되고, 지금 내가 뭘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고민을 하기 시작했어요.
‘회사를 그만두는 것도, 계속 다니는 것도 답이 아닌데 어떻게 해야 하지?’ 하던 와중에 회사 사정으로 희망퇴직을 하게 됐죠.
커리어에 대한 걱정은 없었나요?
걱정만 하고 있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요. 그만둔 후에는 중년 여성을 위한 쇼핑몰을 운영하는 지인과 커피 관련 사업을 해보려고 베트남에 시장조사를 다녀오기도 했어요. 그 일을 하려면 결국 베트남으로 이주해야 할 것 같아서 포기했지만요. 취업 지원서도 계속 썼어요. 헤드헌터에게 연락이 오면 소극적으로 면접도 보고요. 그 과정에서 나한테 맞는 무언가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죠. 창업가도 아니고, 교육자도 아니고, 전업주부도 아니고, 직장인이 맞는 거 같더라고요.
어딘가에 소속된 사람으로 일하는 게 맞았던 거네요.
일을 계속하지 않는 저를 상상하기가 어려웠어요. 항상 어딘가에 소속되어 살아왔고, 해야 하는 일에는 굉장히 몰입하는 스타일이거든요. 일을 쉬면서도 ‘이 생활이 계속된다고? 이건 아닌 거 같은데?’ 하는 생각이 계속 있었어요. 취미가 있고 취향이 확고하면 몰라도, 저는 그렇지 않은 편이에요.
오히려 회사 이메일을 읽는 게 취미일 정도였죠. 동료들한테 ‘이거 너무 재밌지 않아?’ 이러면서. (웃음)
회사를 그만둘 때 오래 쉬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난 쉬지는 못할 거 같은데 뭘 해야 할까?’라는 탐색이 좀 오래 걸렸어요.
위커넥트에는 어떻게 입사하게 된 건가요?
하루는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어요. 일에 관심이 없어서 안 하는 엄마들도 있겠지만, 일하고 싶은데 여건이 안돼서 못하는 경우가 더 많지 않을까 하는 내용이었죠. 그걸 보고 이전 직장 동료 중 한 명이 근무 조건을 유연하게 조정해줄 테니까 같이 일해보자는 연락을 줬어요. 한 두 달 정도 해보니까 너무 좋은 거예요. 또 이런 일이 없을까 차던 중에, 위커넥트가 리쿠르팅 파트너로 함께 하는 루트임팩트의 ‘임팩트커리어 W’라는 프로그램을 알게 됐어요. 임신과 출산, 육아 등으로 일을 쉬고 있는 여성들을 ‘경력보유여성’이라고 부른다는 점, 이런 여성들이 지속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의 확산을 목표로 한다는 점이 너무 좋더라고요. 임팩트커리어 W를 통해 한 회사에 지원서를 냈다가 떨어지고, 얼마 후 위커넥트에서 플랫폼 운영 매니저를 뽑고 있다는 연락을 받게 됐죠.
그전까지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셨나요?
가장 오래 근무한 회사에서는 프로젝트 단위로 일했는데, 웹사이트 구축 프로젝트나 앱스토어 운영 프로젝트 등을 맡았죠. 희망퇴직했던 회사에서는 CS 매니저로 일했고요. 그동안 어떤 일들을 했는지 돌아보니 운영 전반에 관련된 과정을 경험했더라고요. 프로젝트를 만들고, 정책을 세우고, CS 콘텐츠를 만들어 직원들을 교육하는 것까지가 항상 제 일에 포함돼 있었어요. 스스로 이름을 붙여보자면 프로세스 기획자이자 운영 매니저라고 할 수 있겠죠.
지금 위커넥트에서는 어떤 업무를 담당하고 있나요?
위커넥트의 온라인 채용 플랫폼을 관리하고 있어요. 지원자들과 채용사의 공고를 살펴보고, 누군가 지원했을 때 그 이후에 진행돼야 하는 것들을 챙기고, 문의에 대응하는 등 채용 과정 전반에 관한 일을 해요. 지원자와 채용사가 서로 일의 진행 과정을 궁금해하기 때문에 중간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잘 해주는 게 중요하죠. 여기에 더해서, 원래 위커넥트는 출산과 육아로 일을 그만두게 된 경력보유여성을 메인 타깃으로 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운영을 하다 보니 싱글인 분들, 결혼은 했지만 아이가 없는 분들도 위커넥트 온라인 채용 플랫폼에 많이 가입하시더라고요. 특히 여성의 커리어는 생애주기에 따라 굉장히 다양한 상황에 노출되고 그에 따른 다양한 니즈가 존재하기 때문에 프로페셔널 여성을 위한 채용 플랫폼에서 커리어 플랫폼으로 서비스를 확장하는 것을 준비중이에요.
위커넥트의 플랫폼 운영 매니저로서 더 해보고 싶은 일은 뭘까요?
사실 많은 경력보유여성들이 일을 다시 하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는데, 행동을 잘 못 해요. 자신감이 떨어져 있는 상태거든요. 이런 분들이 모여 공감대를 형성하고,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워크숍이나 여러 가지 행사를 좀 더 규모 있게 만들어보고 싶어요. 누구의 엄마나 누구의 아내가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 다시 바라보게끔 하는 기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런 단계를 거쳐 채용이든 창업이든 원하는 커리어 패스로 연결된다면 가장 좋겠고요.
본인의 삶과 밀착된 이슈를 다루고, 또 유연근무제를 선택한 회사에서 일하며 커리어에 대한 계획이나 감각이 예전과는 달라진 부분도 있을 것 같아요.
예전에는 비슷한 조건에 비슷한 업무를 하는 회사로 이직을 했어요. 거기서 직급이 올라가는 것 정도만 생각했고요. 가치 있는 일인가? 의미 있는 일인가? 내가 정말 재미있어서 하는 일인가? 아니면 돈인가? 다 따져봤을 때 돈만 남더라고요. 지금은 시간과 가치에 중점을 두고 일하는 것 같아요. ‘나만 잘살면 되겠지’라는 생각에서 점점 더 확장되고 있는 거죠.
커리어도 확장되지만, 인생의 가치관도 함께 확장된다는 느낌이에요. 커리어의 계획이 아주 많이 바뀌었다기보다는 인생과 좀 더 같이 가게 된 것 같아요.
커리어를 다시 시작하거나 전환하고 싶은 다른 여성들에게 남기고 싶은 이야기도 있나요?
저를 비롯한 위커넥트 파트너들의 인터뷰를 보면서 이 사람들은 괜찮은 경력이 있어서, 특별한 능력이 있어서 일을 계속하고 있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다른 사람이 한 일은 그 안에 어떤 노력이 있었는지 모르기 때문에 더 화려해 보이는 거거든요. 저도 이력서를 내고 떨어져 본 경험을 많이 갖고 있어요. 상처받지 않으려고 ‘나한테 딱 맞는 뭔가가 나오지 않으면 절대 도전하지 않을 거야’라는, 거절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갖고 계신 분들이 많아요. 그런데 지원서도 한번 써보고 면접도 보면서 결과와는 별개로 그 과정에서 파악하게 되는 것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과정을 통해 나의 시야를 넓혀나간다고 생각하면서, 많이 시도해보셨으면 좋겠어요.
인터뷰: 황효진
황효진은 더 나은 여성의 삶을 위한 콘텐츠 플랫폼 ‘헤이메이트’의 콘텐츠 코디네이터다. 웹매거진 <텐아시아>와 <아이즈>에서 기자로 일했고, 에세이집 <아무튼, 잡지>를 썼다.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여성 여덟 명의 인터뷰집 <일하는 여자들>, 두 여성 프리랜서의 생존 실험 에세이 <둘이 같이 프리랜서>를 기획/공동집필 했다. 셀럽 맷, 윤이나 작가와 함께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를 여성의 관점에서 이야기해보는 네이버 오디오 클립 <시스터후드>를 진행 중이다.